출처 = 프레시안

[이정전 칼럼] 누가 '신중상주의 시대'를 불러 오나



극우파와 극좌파

경제학자들이 자본주의 체제를 설명할 때 가장 자주 쓰는 말은 아마도 "보이지 않는 손"일 것이다. 이 말은 아담 스미스(Adam Smith, 1723-1790)의 『국부론』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다. 돈을 좀 더 많이 벌어보려는 욕심으로 생산자들이 서로 경쟁을 하다보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결국은 국민들 모두에게 이로운 결과가 오게 된다는 주장이 『국부론』의 핵심내용 이며, 오늘날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일반인에게 호소하는 주된 메시지이다.

『국부론』이 나온 1776년부터 비로소 서양이 동양을 앞지르기 시작하였다는 말도 있다. 그 만큼 『국부론』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고 전파함으로써 서양사회의 발전에 엄청나게 기여하였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아담 스미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면 골수 보수주의자 내지는 극우파라고 할 수 있다. 흔히 미국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 대처 수상이 1980년대에 전 세계적으로 보수주의(신자유주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으로 꼽히는데, 레이건 대통령의 당선 축하파티에 모인 공화당원들은 모두 아담 스미스의 옆얼굴을 새긴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고 한다. 그럴 정도로 아담 스미스는 보수주의자의 우상이다.

그러나 아담 스미스가 활동하던 당시에는 그를 비롯하여 그의 추종자들 대부분이 오늘날로 치면 급진주의자 내지는 극좌파였다. 이들은 출신 지역부터가 이단적이었다. 아담 스미스는 당시 영국에서 천대받던 스코틀랜드 출신이다. 그의 뒤를 이어 경제학의 기반을 닦은 초창기 거장으로 리카도(D. Ricardo), 맬서스(T. Malthus), 밀(J. S. Mill) 등이 늘 꼽히는데, 리카도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스코틀랜드 출신들이다. 리카도는 영국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천대받던 유대인 출신이다. 지금도 스코틀랜드는 여차하면 영국에서 독립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2008년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영국경제가 큰 타격을 받으면서 스코틀랜드의 독립가능성이 더욱 더 높아졌다는 말도 나왔다.

어떻든, 오늘날 보수주의자의 우상으로 숭배되는 경제학 창립자들이 당시에는 체제에 도전하는 위험한 인물들이었다. 아담 스미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도전한 체제는 중상주의다. 그가 살던 당시 유럽은 절대군주 중심의 국민국가로 재편되었으며 상공업이 급속하게 성장하여 시장이 크게 활성화되었던 시기다. 새롭게 형성된 국민국가의 최대 목표는 국가의 부강이었다. 당시 지배계층은 국내로 유입되는 금은보화(금전적 부)의 총량을 극대화하는 것이 곧 국가를 부강하게 만드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보았다. 이런 목표를 중심으로 절대군주와 상공인들 사이의 야합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각 국민국가는 국내 상공업의 육성과 무역흑자에 박차를 가하였다. 국내 상공업의 발전을 위하여 국민에게는 저임금이 강요되었으며, 무역흑자를 극대화하기 위한 각종 보호무역 정책이 과감하게 추진되었다.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당시 사회를 지배하던 중상주의 풍조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국내 상공업을 육성한다는 명분 아래 당시 절대군주는 상공업자들에게 각종 독점적 면허를 부여하고 차별관세를 비롯한 각종 보호무역 정책을 강력하게 실시하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정부가 경제에 깊숙이 개입하였다. 아담 스미스는 정부의 폭넓은 개입을 당연시하는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질타하였다. 그가 『국부론』을 통해서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었던 것은 정부가 쓸데없이 경제에 개입하지 말고 기업의 자율을 최대한 보장하라는 내용이었다. 정부의 비호 아래 국내 상공업이 육성되다 보니, 상공업자들은 경쟁을 기피하고 나아가서 경쟁을 부정적으로 보는 풍조가 퍼졌다. 그런 가운데 독과점이 정당화되었으며, 독과점은 점점 더 심해졌다. 아담 스미스는 기업들 사이의 자유로운 경쟁이 참된 국부의 원천이 된다는 점을 『국부론』에서 수차례 강조하였고 '보이지 않는 손'의 논리를 이용하여 왜 그런가를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통탄해 마지않았던 또 한 가지는 상공업자의 이익을 국익과 동일시하는 사회적 풍조였다. 일반 국민의 희생 위에 상공업자들은 막대한 이윤을 챙겼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이익에 기여하는 것이 곧 국익에 기여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당시 사회를 지배하였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정부의 주요 목표는 곧 상공업자의 주요 목표였고 그것은 곧 국내에 유입되는 금은보화 총량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즉, "정부의 주요 목표 = 상공업자의 주요 목표 = 금전적 부의 극대화"라는 삼위일체가 중상주의의 핵심 내용이었다. 아담 스미스는 이 삼위일체를 전면 배격하였다. 그리고 국민의 이익을 상공업자의 이익이나 정부의 이익에 우선하는 최상의 가치로 삼았다. 바로 이점이 『국부론』을 통해서 아담 스미스가 보여준 또 하나의 획기적 발상이었다.

신중상주의 시대?

비록 중상주의가 멀게는 500여 년 전, 가깝게는 250여 년 전 서구사회를 지배하던 케케묵은 사상이라고는 하지만, 『국부론』에서 아담 스미스가 심히 우려했던 당시 중상주의적 풍조는 결코 죽지 않고 오늘날에도 살아남아 있다. 오늘날의 국가들도 중상주의시대처럼 치열한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다. 정부의 간섭과 영향력은 날로 늘어나고 있다. OECD국가의 경우 국내총생산 대비 정부재정지출의 비율이 1960년에만 해도 평균 27.2%에 불과하였지만 1990년에는 45.2%에 이르렀다.

상공업자의 이익을 국익과 동일시하는 풍조 또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 삼성의 이익이 곧 국익이요, 현대의 이익이 곧 국익이라는 말을 모두 한두 번씩은 들어봤으리라. 재벌이 잘 되어야 국가가 발전한다는 식의 주장이 주요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퍼져 나오고 있다.

오래 전부터 보수진영은 우리나라의 반기업 정서가 시장경제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였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교과서부터 시비를 걸었다. 중국의 교과서에는 기업의 이익 증가가 국익 증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기술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의 교과서에는 그런 말은 없고 오히려 기업에 대하여 나쁜 인상을 심어주는 내용들이 많다는 것이다. 경제교육을 다시 해야 한다는 요구가 보수진영에서 나오자 시민을 상대로 한 국책연구기관의 경제교육도 반기업 정서를 은근히 비난하는 내용들을 많이 담고 있다.

▲ 전경련에 펴낸 중학교 경제교과서. ⓒ뉴시스

사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성공한 기업가는 일반 서민들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엄청난 보수를 받고 있다. 실패한 기업가도 엄청난 보수를 받는다. 2008년 미국의 대형 금융기관들이 줄줄이 도산을 했을 때도 그 금융기관의 임원들은 수십 만 달러의 보너스를 챙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모양이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소득과는 별도로 기업가들을 사회가 존경까지 해주는 풍토가 조성되어야만 우리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교수들이 적지 않다.

아담 스미스가 그토록 개탄하였던 정경유착과 기업의 독과점 현상 역시 여전하다. 우리가 일상 소비하는 많은 상품들이 독과점 기업들이 생산한 것들이다. 자동차가 그렇고 각종 가전제품들이 그렇다. 아직도 기업들 사이의 담합이 끊이지 않는다. 바로 얼마 전에도 비누업체들의 담합에 대하여 공정거래위원회의 경고가 떨어졌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으레 음모와 담합을 일삼는다는 말이 『국부론』에 나온다. 자본주의 체제의 수호자로 추앙받는 아담 스미스조차도 『국부론』 곳곳에서 이런 반기업적 발언을 하고 있다.

사실, 기업은 생리적으로 경쟁을 싫어한다. 이점을 아담 스미스도 분명히 의식하고 있었다. 경쟁은 사람을 필요 이상 피곤하게 만들뿐 아니라 경쟁하다 망하기 십상이다. 경쟁하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그렇게 해보려는 것이 기업의 생리다. 경쟁을 하지 않고 큰돈을 벌 수 있는 한 가지 효과적인 방법은 힘을 길러서 경쟁자들을 삼켜버리거나 경쟁자와 담합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아담 스미스가 이상적으로 생각하였던 자유방임주의는 그의 기대와는 달리 늘 거대 독과점과 담합을 낳았다. 기업의 경쟁기피 성향이 그 만큼 강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자들은 기업이 시장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내버려두면 기업간 경쟁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결국 국민의 이익도 증진된다고 주장한다.

경쟁을 피하면서 돈을 버는 또 한 가지 효과적인 방법은 정치권에 기대어 독점적 특권이나 특혜를 따내는 것이다. 골프장을 내면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하지만, 아무나 골프장을 차릴 수는 없다. 한 때는 청와대와 직접 끈이 닿아야 한다는 소문이 나있을 정도로 막강한 정치적 배경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아무리 카지노사업이 돈벌이가 좋다고 한들 아무나 카지노장을 열수는 없다. 정부의 면허를 따야 한다.

어느 나라에서나 산업계는 외국의 저렴한 제품이 수입되는 것을 반대한다. 그래서 상공업자들은 외국제품에 대하여 높은 관세를 부과하라고 정부에 압력을 넣는다. 이런 업계의 정치적 압력은 정부의 각종 규제와 인허가 제도로 구체화된다.

규제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업계가 반대하고 시민단체가 지지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시카고대학 스티글러교수의 얘기를 들어보면, 업계가 주도하고 업계의 이익을 보호하는 규제도 무척 많다. 요즈음 귀가 따갑게 듣는 비자금은 이런 규제에 대하여 업계가 정치권에 바치는 대가이다. 이런 규제는 쉽게 완화되지도, 잘 없어지지도 않는다.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한 업계의 집요한 정치력이 막후에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시민의 건강이나 복지에 관계되는 규제는 쉽게 완화되거나 없어진다. 요즈음과 같이 경기가 나빠지면 각종 규제를 완화해야 경제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주장이 더욱 더 강한 설득력을 가진다. 신자유주의자들은 틈만 나면 규제를 완화하라고 외치는데, 이들이 말하는 규제는 기업들에게 걸림돌이 되는 것들이다.

지대 추구

기업이 경쟁을 기피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아담 스미스의 생각은 면면히 이어 내려오면서 오늘날 이른바 "지대추구이론(렌트추구이론)"으로 발전하였다. 독점적 특권이나 특혜로 인한 이익을 흔히 "지대(렌트)"라고 말한다. 이 지대추구이론이 문제 삼는 지대는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특혜가 아니고 업계가 정치권과 결탁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특혜다.

경쟁을 회피하려는 강한 유혹에 빠져서 기업이 정치적 특권이나 특혜를 통해서 사익(인위적 지대)을 극대화하려고 열심히 뛰는 현상을 어느 학자는 "보이지 않는 발"로 표현하였다. 지대는 보이지 않는 발의 성과물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다수에게 이익을 준다고 하지만, 보이지 않는 발은 다수의 희생 위에 소수에게 이익을 집중시킨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손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만 보이지 않는 발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본주의 경제에는 보이지 않는 손도 작용하지만 이에 반하는 힘도 작용한다고 아담 스미스는『국부론』에서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기업의 지대추구행위에 대한 그의 강한 경계심이 그로 하여금 중상주의를 그렇게 강력하게 비판하게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떻든, 오늘날에도 보이지 않는 손과 보이지 않는 발이 모두 작동하는 것이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다.

▲ 재계 인사들과 만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하면서 출범한 이명박 정권은 경제위기 대응책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재계의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뉴시스
이와 같이 자본주의 경제에 보이지 않는 손과 보이지 않는 발이 동시에 작용한다면 과연 어느 것이 더 강한가? 보이지 않는 손은 바람직하지만, 신속하지 못하다는 치명적 약점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서 정부가 통화량을 증가시킨다고 하자. 그 효과는 빨라야 8개월 내지 1년 후에 나타난다는 것이 학계의 연구결과이다. 요즈음 경제 불황의 한파가 전 세계적으로 불어 닥치면서 기업의 도산과 실업이 속출하고 있다. 이것을 그대로 내버려두면 어떻게 될까?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이면서 부실기업은 도태되고 경쟁력 있는 강한 기업들만 살아남는다. 임금과 금리는 점차 떨어진다. 그러다 보면 기업의 수익성이 높아지면서 불황의 먹구름이 서서히 걷히고 경기가 다시 살아난다.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자본주의 경제에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경제 불황은 체질 개선의 결정적 계기가 된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을 시장의 자율에 맡기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자본주의 체질이 개선되면서 불황이 극복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짧게는 2, 3년 길게는 6, 7년이 걸린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은 10년 이상 지속되었다. 불황이 극복되기까지 오랜 진통을 겪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희생당하는 사람들은 주로 서민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이렇게 더디게 움직이는데 반해서 보이지 않는 발은 마당발처럼 열심이고 신속하며 끈질기다. 우리 현실에서 지대추구가 다반사로 일어나면서 잘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결국 보이지 않는 손의 위세가 보이지 않는 발의 부지런함과 신속함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대체로 보면, 경제학자들은 보이지 않는 손을 과신하는 가운데 보이지 않는 발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경제학의 성서인『국부론』에서 경제학자들은 보이지 않는 손만 열심히 읽었지 보이지 않는 발은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경제학의 주요 이론이나 신자유주의 주장은 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지 않는 발을 압도하고 있을 때나 타당하다. 보이지 않는 발이 판을 치고 있는 현실에서 자유방임을 주장하고 시장의 원리를 고집하는 것은 오히려 아담 스미스가 그토록 경계한 중상주의를 불러일으키는 짓이다.

보이지 않는 발은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은 개도국 및 후진국에서나 힘을 쓰는 것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결코 그렇지 않다. 물론, 지대추구 행위가 후진국에서 만연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주도의 고도경제성장을 이룩한 우리나라의 경우, 사업진출권, 금융의 여신관리, 세제 등을 정부가 주도하였으며, 대기업 위주의 성장정책은 자연히 산업에 대한 각종 진입규제를 낳았다. 골프장, 카지노, 금융기관, 학교, 병원 등 수많은 사업의 설립과 관련하여 정부가 인허가권을 틀어쥐고 있다. 지대추구이론가들이 볼 때 이런 것들이 지대추구의 기회를 풍부하게 한다. 기밀비, 접대비, 비자금, 고위층과의 밀착, 방대한 정치자금, 등은 지대추구의 간접적 증거가 된다.

그러나 후진국 기업이나 선진국 기업이나 경쟁을 기피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발은 선진국에서도 열심히 뛴다. 우리 경제가 선진화 된다고 해서 보이지 않는 발이 없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시장경제가 최고로 발달한 미국에서 지대추구이론이 개발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이익집단(로비스트)의 천국이라는 말을 듣고 있다. 그만큼 지대추구가 활발하다는 얘기다.

고전적 지대추구이론의 창시자이면서 우리나라도 여러 번 방문하여 지대추구를 경고했던 미국의 툴럭(G. Tulluck)교수는 지대추구자(로비스트)들이 열심히 발로 뛰는 가운데 소모되는 자원 역시 막대한 사회적 손실임을 역설하였다. 지대추구에 소모되는 자원 중에서 그는 특히 고급 인력에 주목하였다.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로비스트들은 "매우 똑똑하고 야심에 차있으며,…지대추구에 종사하지 않았더라면 다른 일로도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재능 있는 사람들"이라고 술회하고 있다. 국민경제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 일(지대추구)에 그런 능력 있는 인재들이 썩고 있다는 점을 그는 몹시 안타까워했다. 툴럭교수의 주장이 미국에만 적용되는 얘기가 아님은 물론이다. 우리나라의 엘리트들은 과연 어떤가?

/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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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정치는 사양산업, 해법은?"

"촛불 때 물먹은 곳은 MB 아닌 국회"

기사입력 2009-02-19 오후 6:56:25

국회 각 상임위별 전투가 개시된 19일 김부겸, 남경필, 원희룡, 정장선 4명의 여야 중진의원들이 모여 '의회정치의 위기'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정보화 사회에서 의회정치는 사양산업"이라는 진단 속에 "신뢰 회복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제도적 원인: 정보사회 의회는 사양산업

이날 오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박재창 교수(숙명여대)는 "위기의 가장 본질적인 원인은 의회산업 자체가 사양산업이라는 점"이라며 제도적 문제를 지적했다.

이 는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의회정치는 과거 시간과 공간적 제약이 있던 산업사회에서 의회는 국민의 의견을 대변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간접 민주주의 체제지만, 정보화 사회에서는 어떤 문제가 터졌을 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사라져 순식간에 전국적 이슈가 되는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가 발달해 의회가 개입할 여지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정보사회가 심화되며 의회정치가 작동을 하지 않은 대표적 예가 2008년 촛불시위"라며 "촛불시위 때 물을 먹은 곳은 이명박 정부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회"라고 꼬집었다. 박 교수는 "행정부와 국민들이 직접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며 "의회는 대표성을 잃어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사회 갈등을 해결하지 못 한다"고 말했다.

▲ ⓒ프레시안

상황적 원인: 신뢰 상실 심각

제 도 개선에 앞서 당장 시급한 과제는 '신뢰 회복'이라는 지적이다. 고성국 박사(시사평론가)는 "홍준표 원내지도부는 청와대에 의해 브레이크가 걸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원혜영 원내지도부도 비슷한 상황인 것 같다"며 "이런 상태면 국민들이 원내지도부를 신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고 박사는 "연말 입법전쟁이 어떻게든 여야 합의에 의해 종결됐다는 점이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며 "여야 원내지도부는 나도 살고 상대방도 살려주는 노하우와 균형점을 찾았다고 판단되면 과감한 결단력을 갖고 당내 반발로 사퇴를 하더라도 합의를 지키는 담대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문했다.

고 박사는 "비선거철에는 무당층이 40% 정도일 수 있지만 무당층이 60%가 넘었다는 것은 의회 정치가 축소되는 심각한 위기로 경계해야 한다"며 "시류에 편승하는 포퓰리즘에 빠지지 말고 합의는 무조건 지키는 관행이 정착돼야 제도 개선도 의미 있다"고 말했다.

정치 분야 '조직' 문화 너무 강해

' 신뢰'의 위기는 현역 국회의원들이 더욱 심각하게 느끼고 있었다. 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체력단련실에서 같은 당 의원과 얘기를 하다가도 다른 당 의원이 들어오면 대화 주제를 바꿀 정도로 신뢰가 없는 상태"라며 "국회가 사회 갈등을 조정해야지 사회 갈등을 배포만 하면 설 자리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은 "17대 국회 수석부대표를 하던 시절 법사위 점거를 진두지휘 했는데 이번에 서갑원 수석이 본회의장 점거하는 것을 보면서 데자뷰를 느꼈다"면서 "17대 국회에서 김부겸 의원과 수석부대표로 협상 하던 시절에는 5분이면 협상이 끝났는데, 신뢰가 효율성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남 의원은 "대통령제도 위기, 의회도 위기, 민주노총도 위기, 재벌도 위기 등 과거 권위있던 기관과 단체들이 모두 위기에 처하며 '그라운드 제로'로 가고 있다"면서 "우선 정치적으로는 3권 분립이 절실하게 요구된다"고 말했다.

같 은 당 원희룡 의원은 "정국 주도권 공방전이 벌어지면 집단적 분위기가 생겨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다"고 말했고, 민주당 정장선 의원은 "오바마 대통령은 법안 통과를 위해 공화당 의원들에게 일일이 전화해 협조를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0표가 나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이 야당 지도자에게는 전화 한 통 하지 않느냐"고 불만을 나타냈다.

정 의원은 "청와대와 여당은 '경제살리기'라며 무조건 따라오라고만 하니 야당 입장에서는 반발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라며 "우리나라 정치에서는 조직 논리가 너무 강하고 당론에 의한 규제가 너무 강하다"고 말했다.

대안: 직접민주주의 강화, 3권 분립 강화, 의원 독립성 강화….

그 렇다면 대안은 무엇이 있는가. '의회는 사양산업'이라고 진단했던 박재창 교수는 "대의정치에 의해 국회가 갖는 권리의 상당 부분을 국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며 △국민발안 △국민소환 △옴부즈만 제도 등 직접 민주주의 확대를 제안했다.

원희룡 의원은 수시로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있는 스위스를 예로 들며 "정치권에서 합의되지 않는 안건들에 대해서도 한 달 동안 토론하고 국민들이 직접 투표를 하는데, 전자투표와 모바일 투표가 이미 법제화돼 있다"고 거들었다. 스위스는 최근 EU 노동협약 연장안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했는데 제1당인 보수 성향의 스위스국민당이 반대했으나 60%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박 교수는 "유럽에서는 2000년대 들어 정보화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는 판단 하에 직접민주주의 확산을 위해 국민들의 '교양있는 참여', '훈련된 참여' 등 기본적 역량 증진을 위한 민주시민 교육 투자를 탑 아젠다로 삼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교수는 이밖에 "국회가 여의도에만 갇혀 있는데 지구당을 복원하고 국회의원 사무실을 국회 파견사무소화해 국가가 운영해야 한다", "대통령제와 내각제가 혼합돼 있는데, 어느 한 쪽으로 일원화해 기관 대립형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교섭단체를 없애 의원 개개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 등의 대안을 제시했다.

당장의 국회 경색을 풀기 위해서는 '작은 것, 공통점부터 찾아가자'는 대안이 제시됐다. 김부겸 의원은 "쟁점을 최대한 잘게 나눠 '스몰딜'부터 해 나가야 한다"고 제안했고, 참관하던 자유선진당 이상민 의원은 "같은 점을 먼저 찾아가면 접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한나라당 남경필, 원희룡 민주당 김부겸, 정장선 의원. ⓒ프레시안

중도 성향 중심 정계개편?

한 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가볍게나마 '정계개편'이 언급된 점도 흥미롭다. 박 교수는 원희룡, 남경필, 김부겸, 정장선 의원에게 "'소속 당에서 언제든 쫓겨날지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농담으로 운을 뗀 뒤 "국민들이 여의도에 입성하기 직전인데 정치권 내부에서 정계개편이라는 뇌관을 쏴주는 자기 혁신의 결단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원로로 초대된 인명진 목사(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는 "억지로라도 타협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선진과 창조의 모임'이 교섭단체 틀에 들어가 (조정과 중재를 하는 것을) 의미 있게 봤다"고 말했다.

인 목사는 "나도 충청도 사람이지만, 지역을 기반으로 한 교섭단체가 아니었으면 좋았겠다"면서 "18대 국회에 (그런 역할 할) 국회의원 20명이 없을까"라고 '새로운 교섭단체' 구성을 위한 정계개편을 언급하기도 했다.

/김하영 기자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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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新聞社主'와 '財界'의 ‘婚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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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주-재계 ‘혼맥’ 파이프라인”
 

 
 
 
 
조광명씨 논문서 조·중·동-재벌 혼맥 분석‘
그들만의 세계’ 구축돼 “언론 공공성 의심”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거대신문들이 재벌과 맺은 혼맥관계를 분석한 논문이 나왔다. 지난해 참여연대와 <문화방송> ‘피디수첩’이 30대 재벌 혼맥 조사를 벌인 적은 있지만, 언론사를 중심에 놓은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는 조광명(41)씨는 ‘한국 언론 사주의 혼맥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신문사의 재정상태를 담보하는 것은 광고밖에 없기 때문에 혼맥은 신문사주와 재계 사이의 파이프라인 구실을 한다”고 주장했다.
 
조씨가 분석한 바로는, 이 ‘파이프라인’은 복잡하게 얽히고설키다가 결국엔 조·중·동을 한데 엮어주는 양상을 보인다. 조선일보의 경우 방씨 일가가 엘지그룹 허씨 가문과 사돈을 맺었으며 엘지에서 뻗어나간 혼맥을 통해 벽산그룹·박정희·김종필씨 등과 연결된다. 방일영 전 회장의 동생인 방우영 명예회장 일가는 태평양그룹과 사돈이며 건너건너 농심·동부그룹·삼양사 등과도 맥이 닿는다. 삼양사는 동아일보 김성수 일가와 형제집안이어서 결국 조선일보는 멀긴하지만 동아일보와 인척관계가 된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동아 김병관 전 명예회장의 아들이 삼성 이건희 회장의 딸과 결혼했는데, 이건희 회장은 중앙일보 초대회장인 홍진기씨의 사위이므로 결과적으로 조선은 중앙과도 연결된다.
 
중앙일보의 경우 홍진기 회장의 딸 홍라희씨가 삼성 이병철 창업주의 아들 이건희 회장과 결혼했다. 홍 회장의 둘째딸은 전 국무총리인 노신영 일가에 시집갔고 노 전 총리 아들은 현대그룹의 사위가 됐다. 현대의 혼맥은 김동조 전 외무장관 일가를 통해 엘지 허씨 일가에까지 이어진다. 허씨 집안은 조선 방상훈 사장과 사돈이기 때문에 중앙은 조선과 인척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중앙은 삼성 혼맥을 통해 동아와도 연결된다.
 
동아일보의 경우도 사돈을 맺은 기업에 다소 차이가 있을 뿐 조선·중앙 등의 ‘혼맥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출발점을 조·중·동 가운데 어디로 잡든 거대신문과 재계의 탄탄한 ‘혼맥 카르텔’이 쉽게 확인되는 것이다.
 
조씨는 “재벌과 혼맥을 맺다보면 언론은 대기업 중심의 정책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들이 특소세 폐지, 법인세 인하 등을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지적했다.
 
김영호 언론개혁국민행동 공동대표는 “언론과 재계가 맺는 혼맥 자체를 비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하지만 ‘그들만의 세계’가 구축되는데다 신문들이 사돈관계에 있는 기업의 간접지원까지 받다보면 기사의 공공성이 보장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원본 : '新聞社主'와 '財界'의 ‘婚脈’
Posted by 환타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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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줄 요약

1. 이문열 씨가 시민연대가 맘에 안들어서 별 시덮잖은 이유로 깜.
2. 진중권 씨가 이문열 씨의 잘못을 지적하는데, 위아래가 없이 했음.
3. 박경범 씨가 이문열 씨 잘못은 걍 덮어두고 진중권 씨가 너무 막말한다고 함.
4. 진중권 씨가 어디서 개기냐고...
5. 이문열 씨가 어디 듣보잡들이 정치에 낄라 그러냐고...
6. 진중권 씨가 "뭐이 병신아!?"

중앙일보, 2000. 2. 8
[시론] 홍위병을 돌아보며
▲ 이문열 <작가>

지 도자가 기존의정치체제 안에서 충분한 권력기반을 확보하지 못하면 외부의 힘에 유혹을 느끼게 된다. 60년대 중국 대륙을 폭력과 유혈(流血)로휩쓴 홍위병(紅衛兵)은 공산당 지도부 장악에 자신이 없어진 마오쩌둥(毛澤東)이 체제 밖의 힘을 끌어들여 자신의 권력을 유지 내지강화하려고 조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위병이 주도한 문화혁명(文化革命)에 대한 평가도 반드시 일치하지는않으나 일반적인 견해는 있다. 그 운동이 중국 사회를 분열시켜 수백만의 인명이 살상됐으며, 지식인 탄압으로 중국 문화를 수십년후퇴시켰다는 비난이다. 毛를 사랑하는 대부분의 중국 사람들도 그의 유일하고 중대한 실책으로 흔히 문화혁명을 든다.

그 런 부정적인 평가가 아니더라도 총선시민연대와 그들이 호소하는 선거혁명을 두고 홍위병과 문화혁명을 떠올리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이될는지 모른다. 우선 홍위병은 위로부터 시작된 조직이었지만 총선연대는 아래로부터 시작된 조직이며, 문화혁명은 피를 동반한관제(官製) 운동이었지만 선거혁명은 무혈(無血)의 시민운동이기 때문이다.

또 끊임없이 나도는 음모설(陰謀說)에도불구하고 현재까지는 정부나 여당이 총선연대의 조직과 활동에 개입했다는 뚜렷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을 뿐더러 시민단체의선의(善意)를 의심할 근거도 없다. 그들이 내건 대의(大義)는 누구도 대놓고 부정하기 어렵고, 많은 사람들은 그런 그들의 활동을오히려 필요하고도 시의적절한 것으로 본다.

그런데도 총선연대 시민단체의 활동을 보면 자꾸 홍위병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아마도 그들의 활동이 이제 시작이며, 정말로 중요한 전개와 변화는 앞날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민련과 공조가 깨지면 집권여당은 불가피하게 체제 밖에서 힘을 끌어들여야만 한다. 그런데 이미 절로 만들어진 조직이 있으니 그 조직을 활용하고 싶은 유혹을 억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시 민단체 쪽도 그렇다. 출발의 선의와 무사(無私)를 믿는다 쳐도 그 일관된 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쌀에는 뉘가 섞여들게마련이다. 더구나 대중운동의 장(場)은 시장 못지 않게 그레셤의 법칙이 자주 적용되는 곳이다. 거기에다 기준의 설정과 적용에요구되는 공정성을 확보하는 일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벌써 일부 지방에서는 총선연대의 낙천자 명단이 오히려 그지역에서는 당선자 명단으로 통하고 있다고 한다. 의식의 차이라고 무시하기에는 너무도 섬뜩한 현상이다. 총선연대의 공천반대기준에는 지역감정의 조장이라는 항목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 경우에는 오히려 총선연대의 활동이 지역감정을 조작한 꼴이 된셈이다.

총선연대의 기준이 너무 윤리적,감성적 측면만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선거는 유능한 정치인을 뽑는 것이지 깨끗하고 착한 시민을 상 주는 것이 아니다. 예견력,결단력,종합관리능력 따위의 너무실제적이고 효율적인 정치생산만을 기준으로 국회의원을 뽑는 것도 문제지만, 청렴이나 의리 같은 윤리적 덕목만을 강조하는 것도올바른 투표권 행사를 유도하는 일은 못된다.

거기에다 만약 총선연대가 출발할 때의 신선함을 유지하지 못하고,집권여당이 그들을 활용하고 싶은 유혹을 끝내 떨쳐버리지 못한다면 총선연대는 한국판 홍위병에 지나지 않고, 그들이 외친 선거혁명은질 낮은 문화혁명이 되고 만다. 이런 점에서 총선연대나 집권여당이 스스로를 경계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시민들도 눈을부릅뜨고 그들 양쪽을 모두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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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00. 2. 10
[시론] 이문열과 '젖소부인'의 관계?
*** '홍위병을 돌아보며' 쓴 이문열 씨에 말한다
▲ 진중권 <문화평론가>

" 끊임없이 나도는 음모설(陰謀說)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는 정부나 여당이 총선연대의 조직과 활동에 개입했다는 뚜렷한 증거는 나오지않았을 뿐더러 시민단체의 선의(善意)를 의심할 근거도 없다. (...) 그런데도 총선연대 시민단체의 활동을 보면 자꾸 홍위병을떠올리게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아마도 그들의 활동이 이제 시작이며, 정말로 중요한 전개와 변화는 앞날에 남아 있기때문일 것이다."

며칠 전 소설가 이문열이 바로 이 자리에서 한 말이다.

음모론. 한 정당의대변인을 졸지에 코미디계의 황제로 등극시켰던 이 조잡한 얘기가 그의 말대로 항간에 "끊임없이" 나돌고 있다. 왜 그럴까? 나는음모론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그것을 정말로 믿어서 주장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설마 한 나라를 이끌어나가시는 분들이 그 정도로머리가 나쁘겠는가? 거기엔 아마 다른 이유가 있을 게다. 즉 거짓말도 참말과 똑같은, 아니 때로는 그것보다 더 큰 정치적 효과를내기 때문일 게다. 게다가 히틀러의 말대로 "대중들은 작은 거짓말보다 큰 거짓말에 더 잘 속는" 법이다.

<에로영화 스타 젖소 부인과 소설가 이문열의 관계는-?>

이 런 제목의 기사는 대중을 즐겁게 해준다. 설사 그 기사가 "아무 관계도 없다"는 허탈한 내용을 담을지라도 말이다. 혹시 이를비난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 경우에는 표현을 슬쩍 바꾸면 된다. 가령 이렇게. 젖소부인과 이문열 사이에 내연의 관계가있다는 "뚜렷한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즉 두 사람의 관계는 한마디로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관계다." 이건 나치선전상 괴벨스가 즐겨 사용하던 어법이다.

어쨌든 아무 "증거"나 "근거"도 없이 이문열은 과감하게 총선연대를중국 문혁기의 "홍위병"에 비유한다. 고약한 상상력이다. 총선연대의 활동의 근거는 국민주권을 명시한 우리 헌법의 참정권보장조항에 있다. "시민들의 참여 없이 민주주의는 살아남을 수 없다." 독일의 대학교재에 나오는 말이다. 참여민주주의가 대의제와함께 민주주의 문화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기둥이라는 것은 현대의 상식이며, 이 상식은 이미 대부분의 나라에서 실천되고 있다.그런데 왜 그의 상상력은 총선연대의 이미지를 찾아 민주국가가 아니라 하필 문혁기의 중국으로 달려가는 걸까? 이렇게 민주주의를볼셰비즘과 동일시하는 것도 이미 히틀러가 한번 써먹었던 수법이다.

"증거"도 "근거"도 없기에'총선연대=홍위병'이라는 등식을 만들기 위해 그는 미래로 날아가야 했다. 즉 "총선연대는 앞으로 홍위병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조심하라." 말이야 맞는 말이다. 그의 말대로 총선연대는 "홍위병"이 될 수도 있고, 심지어 조직폭력배가 될 수도 있다. 여기서총선연대는 아직 홍위병이 되어 보지도 못한 채 벌써부터 그 섬뜩한 이미지를 뒤집어쓰게 된다. 이데올로기는 이런 식으로 작동하는법이다. 음모론(陰毛論)은 포르노다. 언젠가 이문열은 마광수를 질타했지만 정말로 부도덕하고 몰취향한 것은 바로 이 정치포르노다.

제 본능을 적나라하게 표출하는 동물과 달리 인간은 그것을 합리적이며 논리적인 언어로 분절화할 수가있다. 특히 그 일만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을 흔히 문인이라 부른다. 이 점을 깜빡 잊은 이문열 씨에게, 이제 그의 말을 그대로돌려주자. 아무쪼록 그 언어폭력에 속수무책으로 얻어맞는 사람들의 심정이 어떠한지 몸소 체험해보는 귀한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이문열 씨는 지금은 존경받는 소설가이지만 앞으로는 모 정당의 대변인이 되거나 그 당의 공천을 받을 수도 있다. 끊임없이 나도는야합설에도 불구하고 물론 현재까지 이런 발언을 하는 이문열 씨가 정치권 일각의 사주를 받았다는 뚜렷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을뿐더러 그의 선의를 의심할 근거도 없다. 그런데도 그의 행각을 보면 자꾸 나치 친위대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그것은 아마도 그의 활동이 이제 시작이며, 정말로 중요한 전개와 변화는 앞날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ROUND2 FIGHT!
*이문열씨가 아니라 소설가 박경범씨가
"대타"로 붙었습니다


중앙일보, 2000. 2. 15
[시론] '언어 폭력가'는 안 된다
*** 진중권 씨 글과 그의 앞날에 대한 우려
▲ 박경범 <소설가>

근래 들어 과거 군사정부 아래서의 갖가지 인권탄압 사례와 더 나아가 한국전과 베트남전에서의 양민학살 등 우리 국가체제내 공권력의 어두운 면이 유난히 조명돼 많은 사람들 앞에 알려지고 있다.

그 런데 그 모두가 당시의 대통령이 직접 시켜서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결국 그 시대 권력의 취향을 알고 미리 그들의 마음에 드는성과를 내어 눈에 들려했던 자들이 자행했거나 인간인 이상 어느 시대, 어느 집단에도 있을 판단력 결함이 있는 사람에 의해 일어난확률적 사건일 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 분위기는 그 모든 일련의 사건들이 과거 우리의 국가체제에 책임이 없다고는하지 않는 것 같다.

사실 그들 행위의 주체들이 권부(權府)로부터의 지시선상에 있든 없든 간에 국가체제와 관계가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며, 또한 직접지시의 증거가 없다고 해서 국가체제가 그 책임을 덜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상부로부터의 직접적이고 체계적인 비밀지시가 있었느냐는 증거의 존재 여부로 음모론을 저울질하고 권력의 도덕성을 판가름하려는 것은그것이 과거의 일이든 현재의 일이든 무모한 것이라 하겠다.

음모론에 대해서는 그렇다 하고, 필자는 진중권 씨가 먼저 이문열 씨의 글에 한 반론이 평소 진중권 씨의 면모에 비춰 기대한 바에 미치지 못하는 감이 있어 몇마디 더해두려 한다.

" 어쨌든 아무 '증거'나 '근거'도 없이 이문열은 과감하게 총선연대를 중국 문혁기의 '홍위병' 에 비유한다. 고약한 상상력이다."앞으로의 변화와 전개방향에 대한 우려는 얼마든지 열악한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 건강한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 건물을 지을 때잘못하면 무너진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건축자에 대한 모독이 아니다. 자식의 비행(非行)을 나무라는 부모가 자식을 도둑놈이라고생각하지는 않는다.

"참여민주주의가 대의제와 함께 민주주의 문화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기둥이라는 것은 현대의 상식이며, 이 상식은 이미 대부분의 나라에서 실천되고 있다. "

당 연하다. 국민이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돕기 위해 선거출마자에 관한 각종의 정보공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데 정당의 공천권 등한사람이나 단체가 자신의 특별한 결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은, 어떤 상당한 자기절제와 신뢰성의 확인과정을 통해주어지는 것이다. 어쩌면 현실에 대해 비판적이고 참여의식이 있어 도시 중앙의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나라의 정책을 이끄는 고대아테네의 민주정치가 더 자연스러운 것인지 모르겠다.

진중권 씨의 앞날의 전개와 변화에 대해 우려되는 것은 그가 이 사회에서 맡은 역할이 어떤 뒤틀린 무엇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의 글에서 " '에로영화 스타 젖소부인과 소설가 이문열의 관계는?' 이런 제목의 기사는 대중을 즐겁게 해준다." 이로써 진중권씨는 이미 이문열 씨에게 스스로도 인정하는 언어폭력의 주먹을 날렸다. 그는 또다시, "이문열 씨는 지금은 존경받는 소설가이지만앞으로는 모 정당 대변인이 되거나 당의 공천을 받을 수도 있다. 끊임없이 나도는 야합설에도 불구하고…" 라고 다시한번 언어폭력을행사했다.

분에 못 이겨 한번 '욱' 하며 주먹을 내미는 것은 아무리 순하고 예의바른 사람이라도 감정이 격하다 보면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한번 주먹을 휘두르고 나서 다시 궁리해 결정타를 날리는 행위는 일반인은 쉽게 할 수 없는 것이다.말하자면 '폭력기술자' 만이 가능한 것이다. 같은 행위를 한 번 한 것과 두 번 계속 한 것은 그 행위의 우연성 여부에 있어상당한 차이가 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중권 씨는 혹 언어에 의한 폭력을 전문으로 삼는 '언어폭력가' 로 나아가지나 않을까하는, 앞날의 중요한 전개와 변화에 대한 우려를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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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00. 2. 17
[시론] 속 이문열과 '젖소부인'의 관계
▲ 진중권 <문화평론가>

" 사실 그들 행위의 주체들이 권부로부터의 지시선상에 있든 없든 간에 국가체제와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며, 또한 직접지시의증거가 없다고 해서 국가체제가 그 책임을 덜 수는 없을 것이다. 상부로부터의 직접적이고 체계적인 비밀지시가 있었느냐는 증거의존재여부로 음모론을 저울질하고 권력의 도덕성을 판가름하려는 것은 과거의 일이든 현재의 일이든 무모한 것이라 하겠다."

그 저께 소설가 박경범 씨가 이 자리에서 한 말이다. 한마디로 증거가 없다고 음모론을 중지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는얘기다. 증거도 없이 음모론으로 타인을 음해하는 것이 "무모한" 게 아니라, 제발 그러지 좀 말라고 말리는 것이 "무모한"짓이라는 얘기다.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일찍이 소크라테스 이래로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은 그것을 증명할 부담(onusprobandi)을 진다. 그것이 논리학의 상식이다. 즉 증명하지 못할 얘기라면 애초에 꺼내지 말거나 입증할 수 있을 때까지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이유가 있다. 자, 박경범의 말이 옳다면 과연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지 보자.

" 최근 나는 사설 정보팀으로부터 이문열과 젖소부인의 관계를 암시하는 중요한 정보를 입수했다. 즉 지금 청계천에는 <젖소부인바람났네>라는 비디오테이프가 나돌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젖소부인이 바람났다는 것은 확인되었다. 문제는 젖소부인의파트너가 누구냐 하는 것이다. 누굴까? 물론 그 남자가 이문열이라는 증거는 아직 없다. 그렇다고 그까짓 '증거의 존재여부'로둘의 내연의 관계를 말하는 내 주장을 감히 '저울질하고' 이문열의 '도덕성을 판가름하려는 것은 (...) 무모한 것이라'하겠다."

보라. 이렇게 해괴한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가. 그럼 이문열 씨가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사태가 이 정도에서그친다면 나는 아예 이 글을 쓰지를 않았다. 문제는 계속된다. 왜? 이어서 나는 이렇게 물을 테니까. "이문열 씨, 왜 직접나서서 반론을 하지 않고 기껏 유겐트를 내세우고 그 뒤로 숨어요?" 물론 박경범 씨는 이문열과 무관함을 주장하며 오직 청년진중권의 "앞날에 대한 우려"에서 그 글을 썼다고 호소할 것이다. 어쩌면 내게 자기가 이문열의 지시로 그 글을 썼다는 증거를대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럼 나는 이렇게 얘기할 수밖에. 사실 박경범이 이문열로부터의 "지시선상에 있든 없든 간에" 이문열과"관계가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며, 또한 직접지시의 증거가 없다고 해서" 이문열이 "그 책임을 덜 수는 없을 것이다." 이문열씨, "책임"지세요.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보라, 박경범의 말이 옳다고 가정하니까 존경받는 소설가가 졸지에치졸한 사람으로 전락하지 않는가. 이 부조리한 사태를 누가 원하겠는가. 이문열 씨가 원하겠는가? 설마 내가 원하겠는가? 아무도원하지 않는 일을 대체 왜 한단 말인가. 그 연세에 무슨 영광을 더 보려고. 내가 쓴 글의 주제는 바로 이것이었다. 즉"언어폭력을 쓰신 이문열 씨, 당신도 그런 말 들으면 기분 나쁘죠? 그러니 우리 모두 고운 말, 예쁜 말을 사용하는 명랑사회를이룩해요." 이렇게 좋은 말을 하는 나를 박경범은 "일반인은 쉽게 할 수 없는" 짓을 하는 극악무도한 언어폭력배로 매도한다.

자,논리 대신 이렇게 인신공격이나 하면 과연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 나는 자제력이 좀 있는 편이라서 안 그러지만, "일반인"들은이렇게 반응할 것이다. "소설가 박경범 씨는 나름대로 패러디를 한다고 했는데 아무도 웃는 사람이 없다. 이는 그의 문학적 역량에결함이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이런 분이 소설가 행세를 한다니, 실로 한국 문학의 '앞날의 중요한 전개와 변화에 대한 우려를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ROUND3 FIGHT!



조선일보, 2000. 2. 19
[아침생각] 공자가 죽으면 나라가 살까...
▲ 이문열 <소설가>

孔子(공자)는 우리에게 말(言語)로 살아있는 사람이다.

그 의 말이 죽었다면 그도 죽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을 돌아보면 공자는 이미 죽었거나 거의 죽어가고 있는 듯하다. 드물게 論語에 두번씩 나오는 말로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 정치를 꾀하지 않는다(不在其位 不謨其政)"란 구절이 있다. 또 공자는 "천하에도가 있으면 정치가 大夫(여기서는 정치를 전단할 수 없는 하급직위란 뜻)에게 있지 아니하고(天下有道 卽政不在大夫), 천하에 도가있으면 서민들이 정치를 비판하지 않는다(天下有道 卽庶人不議)."라고도 했다.

좋게 보면 전문성의 강조가 되고 나쁘게보면 정치적 무관심을 유도하는 말이 될 테지만 적어도 이 부분에서 공자는 죽은 게 확실하다. 요즘은 자기가 있는 자리가 어디건정치를 떠들어대는 것이 잘나 보이는 세상이다. 옛날의 大夫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직분과 이력을 가진 이라도 무리를 짓고 시세만타면 정치가 제 것인 양 나서고, 서민들은 입만 열면 정치를 비판한다. 그것도 지금 세상의 道라 할 수 있는 민주주의가 발전해서그리된 것이라 하니 공자의 말은 저절로 죽은 셈이다.

공자는 "남의 잘못을 여럿 앞에서 흉보는 자를미워하고(惡稱人之惡者) 아랫자리(혹은 못난 사람)에 있으면서 윗사람(혹은 잘난 사람)을 비방하는 자를 미워하며(惡居下流而 上者)용기만 있고 예의를 모르는 자를 미워하며(惡勇而無禮者) 과감하지만 앞뒤가 막힌 자를 미워한다(惡果敢易窒者)."고 했다. 그의제자 子貢은 "살피는 것을 지혜로 여기는 자를 미워하고(惡傲以爲知者) 불손한 것을 용기로 기는 자를 미워하며(惡不遜以爲勇者)들추어내 고자질하는 것을 정직으로 여기는 자를 미워합니다(惡 爲直者)."고 하여 공자의 허여함을 받았다.

그 런데지금 세상은 오히려 그들 사제가 아울러 미워한 자들이 쑥대처럼 번성한다. 비방과 욕설은 용기의 딴 이름이며 고발과 폭로는 정직의표상이다. 더한 일도 있다. 공자는 "군자는 세 가지를 두려워하나니, 천명을 두려워하고(畏天) 대인을 두려워하며(畏大人) 성인의말씀을 두려워한다(畏聖人之言). 소인은 천명을 알지 못하니 두려워하지 않고(不知天命而不畏) 대인을 함부로 대하며(狎大人) 성인의말씀을 업신여긴다(侮聖人之言)."고 했다.

참으로 세상이 뒤집혀도 어찌 이리 뒤집혔을꼬. 天命 같이 보이지도 않고잡을 수도 없는 것은 무시하고 비웃는 것이 요즈음의 지혜이다. 그리고 그 지혜를 가진 사람을 높이 쳐주니 지금 세상에서는 그가오히려 군자가 된다. 조금이라도 옛날의 大人 비슷하게 평가를 받는 사람이 있으면 악착같이 달라붙어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되잖은논쟁이라도 아득바득 벌이는 것을 보잘 것 없는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수단으로 삼는 知的 파파로치들은 공자에게는 틀림 없는소인이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그걸 똑똑하고 잘난 것으로 여기니 이쯤 되면 공자는 죽어도 무참하게 죽었다.

거기 다가더욱 끔찍한 일은 이 같은 공자의 말을 대하는 요즘 군자들의 태도이다. 그래도 옳은 말씀이 있다 싶어 몇 구절이라도 인용하게되면 몽매하고 썩은 보수주의자요, 봉건주의자 파시스트며, 심하면 왕도 없는 시절에 난데없이 왕당파라고 욕을 퍼부어 댄다. 공자의시체까지 관에서 끌려나와 허리를 베인 꼴이다.

요즘 군자 중에는 어떤 이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했다. 그런데 자―, 이렇게 공자가 죽었으니 이제 나라가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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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다시 살아나도 - 진중권
<시칠리아의 암소> 중에서

" 옛날의 대부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직분과 이력을 가진 이라도 무리를 짓고 시세만 타면 정치가 제 것인양 나서고, 서민들은 입만열면 정치를 비판한다. 그것도 지금 세상의 도라 할 수 있는 민주주의가 발전해서 그리된 것이라 하니 공자의 말은 저절로 죽은셈이다."

얼마 전 조선일보에서 이문열 씨가 한 말이다. 한마디로 시민의 정치참여가 공자님 말씀에 위배된다는것이다. 즉 "옛날의 대부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직분과 이력을 가진" "서민"들이 감히 총선이라는 "시세"를 타서 시민연대라는이름의 "무리"를 지어 "정치가 제 것인양 나서고" 있으니, 오호 통재라, 풍속이 땅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21세기 인터넷시대에 이렇게 이문열은 나 홀로 왕조의 법통을 이어간다. 옛 성현의 말씀이 틀리지 않아 충신의 가문에선 대대로 충신이 나는모양이다. 어쨌든 공자님 말씀이 정말 이런 것을 뜻한다면 나는 흥선대원군을 따라 외치겠다. "공자가 다시 살아나도 용서하지않겠다아아."

이문열 씨는 한 가지를 잊었다. 헌법이다. 우리의 헌법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민주주의란 주권재민의 원리, 즉 통치자와 피치자가 일치하다는 동일성의 원칙 위에 서 있는 정체다. 말하자면 민주주의란 시민들이스스로 자신을 통치하는 자율적인 정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그는 헌법상 주권자인 시민들이 "정치가 제 것인양 나서고" 있다고한탄을 한다. 이 말의 밑바탕에는 정치가 시민들의 것이 아니라는 발상법이 깔려 있다. 그래서 "옛날의 대부급"에 해당하는사람들만 정치에 "나서고" "정치를 비판"할 자격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리라.

이런 몰상식한 발언이 존경받는 소설가의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아마도 그의 정치적 이상은 봉건왕정 내지 플라톤적인 귀족정을 모델로 한 것이리라.물론 공자와 플라톤의 가르침은 오늘날까지도 유효하다. 하지만 이들과 우리 사이에 가로놓인 엄청난 해석학적 지평의 차이를 무시하고20세기가 끝난 이 시대에 기껏 이 고대인들의 정치이상을 설교하는 것은 엄청난 시대착오다. 어쩌면 그는 플라톤처럼 민주정을중우정치 비슷하게 보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플라톤이 <국가>에서 묘사한 이상국가에 가장 근사한 정체를 가진 나라는오늘날 엘리트 당원들의 전체주의 국가뿐이다.

정치는 우둔한 대중이 아니라 지성과 도덕성과 미감을 겸비한엘리트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믿는 분들이 있는 모양이다. 물론 이들은 자기들이 그 고귀한 엘리트에 속한다고 야무지게 착각한다.하지만 보라, 대한민국의 정치 엘리트들의 도덕성을. 우리 나라의 직업군(群) 중 국회의원만큼 전과비율이 높은 집단이 또있겠는가? 게다가 지성? 한 정당의 대변인이 일간신문의 만화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현장을 우리는 라이브로 지켜보았다. 격조나미감? 공천발표 후 각 당의 분위기를 보라. 육탄공격, 기물파손에 분말소화기가 난무하지 않던가.

이를 보다 못해나선 시민들의 운동에 이문열은 아무 "증거"나 "확증"도 없이 "홍위병"이라는 끔찍한 이미지를 부여한다. 그리고 이를 비판하는사람에게 논리적 반론이 아닌 인신공격으로 대꾸한다. "옛날의 대인 비슷하게 평가를 받는 사람이 있으면 (...) 되잖은논쟁이라도 아득바득 벌이는 (...) 지적 파파로치들(...)." 여기서 "옛날의 대인 비슷하게 평가를 받는 사람"이란 물론소설가 자신을 가리킴에 틀림없다. 염치와 겸양의 덕, 공자님은 그런 거 안 가르치셨나?

시민들의 정치참여와 비판에혀를 내두르는 그 사람이 자신만은 신문 칼럼에 글을 써 왕성한 정치참여욕을 과시한다. 자기는 "옛날의 대부급"에 속한다고 믿는가보다. 요즘 이문열 씨가 자주 물의를 일으키는 것은 현대적 수준의 교양이 부족해서 그렇다. 소설의 "대인"이라고 이 교양이저절로 생기는 건 아니다. 나도 옛 성현의 말씀으로 글을 맺는다. 성현의 말씀은 언제 들어도 늘 새롭다.

"시인들은 시작의 능력이 있기에 다른 분야에서도 가장 현명하다고 착각하곤 한다."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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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조갑제 “부자가 더 도덕적, 가난한 자 폐만 끼칠 뿐”

기사입력 2007-07-11 12:55 기사원문보기
[동아닷컴]

“스스로 돈을 벌어 본 적이 없고 공돈으로 잘 먹고 잘 살아온 사람이 돈을 많이 벌어 좋은 데 쓴 사람을 상대로 도덕성 검증이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도덕에 대한 모독이다.”

보수논객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가 재산 형성과 관련해 당내는 물론 범여권으로부터 파상적인 공격을 받고 있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두둔하는 듯한 주장을 펴 눈길을 끈다.

조 전 대표는 11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는 대체로 가난한 사람보다 더 도덕적”이라며 ‘청부(淸富)론’에 근거해 부자인 이 전 시장을 감싸고 나섰다.

그 는 “부자는 우선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신뢰성이 강하므로 부자가 됐다. 즉 도덕적이기 때문에 부자가 됐다는 이야기다”며 “가난한 사람은 신체부자유자나 특별한 가정 사정을 제외하면 대체로 게으르고 무책임하며 신용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또한 “부자는 남을 돕는다. 기업을 만들고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와 월급을 준다. 가난한 사람은 남을 도울 수가 없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 또한 부자가 더 도덕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도 했다.

그 는 이어 “가난은 자랑이 아니다”고 못 박은 뒤 “좌파들은 가난이 자랑이고 가난이 도덕적이라고 속인다. 청빈(淸貧)이란 말을 악용한다. 청빈보다도 더 좋은 게 청부(淸富)다. 정상적으로 돈을 벌고 좋은 곳에 그 돈을 쓰는 것이 가장 큰 도덕”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조 전 대표는 나쁜 부자도 나름대로 사회 발전에 기여한다고도 했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해 불법적이고 부도덕한 일을 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비정상 사회에선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이 경우에도 그들이 벌어놓은 돈 그 자체는 좋은 목적으로 쓰인다. 나쁜 부자가 벌어놓은 돈은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돈의 생명력이다.”

그러면서 조 전 대표는 도덕성 검증으로 시끌벅적한 한나라당에 일침을 가했다.

“요새 유행하는 도덕성 검증은 게으른 좌파들이 만든 것인데 무능한 자를 도덕군자, 유능하여 일을 많이 하다가 실수도 조금한 이를 부패분자로 몰려는 함정이다. 이 함정에 빠진 것이 한나라당이다.”

김승훈 동아닷컴 기자 h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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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XTM에서 끝장토론을 한다길래
음... 공중파에서는 볼수없는 수위까지 다룰지 모르겠어.. 기대가 되는데?
(실은 생방송인줄 알았네요..)

그리고 노회찬, 진중권.................. 오호,, 빠방한 패널들 까지..

그런데 결과는?


1. 동네 반상회에 온듯한 아줌마와 패널들의 억지발언. 그리고 되지도 않는 비유는 그렇게 들어대누..
    더욱 참기 힘든건... 남이 이야기 하는데 말을 대놓고 짜르고 자기 말만하기... 으미 ㅋㅋ

2. 클로버필드를 다시한번 보는듯한 핸드헬드 카메라 기법의 과도한 사용
- 억지로 현장감을 살리려 고정식이 아닌 손에 들고... 흔들흔들... 심심하면 줌이나 팍팍 땡겨대고 ㅎㅎ;
   어지러워 죽는줄 알았쏘

3. 담부터 메이커있는(?) 패널들 부르기는 다 글럿다.


여튼... 시점 좋게, 이름도 거창하게 프로그램 하나 만들어 냈다만.
지/못/미... 막장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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